미디어 이야기1999. 9. 20. 12:00

대안세력으로써의 수용자 역할

 

강 정 훈

 

   언론은 우리 사회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함으로써 이를 견제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언론이 이런 모습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은 오히려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그들의 대변자로 역할하고, 자본에 의해 소유되고 지원받기 때문에 그들에 의해 통제되고, 스스로 거대한 권력기구가 되어 때로 스스로의 권력을 남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언론은 뉴스를 취사선택하여, 거기에 중요성과 의미를 부여하여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는 보도와 평론이라는 저널리즘적 활동을 통해서 그들의 권력을 행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어떤 인물이 무슨 일을 하는 지를 알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이 파악한 현실은 언론에 의해 정의되거나 규정된 현실일 따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언론이 보도한 사건만을 사건으로 알고, 언론이 지적한 문제만을 문제로 인식하고, 언론이 제시한 문제의식과 관점만을 그대로 자신의 문제의식과 관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사람들은 언론이 보라는 것만 보고, 보라는 방식으로만 보게 되는 것이다. 사회의 어떤 특정 부문이나 제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이처럼 사회의 가치판단의 기준 역할을 하는 언론이 지나치게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언론이 그 사회적 역할을 넘어서 권력기구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언론 스스로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반성하고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 하지만 우리 현대사속에서 언론의 모습은 불행히도 그들 자신에 의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만들었다. 결국 우리 언론의 자정과 민주화를 위해서 외부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언론의 자정과 민주화를 정부의 힘에 의존할 수는 없다. 그는 언론의 타율성을 증대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뿐이라는 것또한 우리의 현대사가 대변한다. 결국 우리는 언론의 수용 당사자인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변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능동적 수용자의 토대가 되는 모니터와 미디어교육

 

  언론의 개선을 위한 수용자가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행위로써 비민주적이고 불공정한 보도의 개별 사례들을 감시하여 이를 시정하고 개선하도록 감시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보도 사례들을 모니터하여 그 비민주성이나 불공정성을 똑바로 파악해야 한다. 그것을 근거로 언론사에 보도의 개선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모니터 결과를 토대로 해당 언론과 언론인에게 적극적으로 시정과 개선을 요구하는 등 압력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물론 이런 작업은 수용자 자신이 언론을 비판해낼 수 있는 능력을 토대로 가능한 것이기에 미디어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수용자의 능동성을 가능케 하는 매체 환경

 

   하지만 모니터를 통한 비판 운동과 수용자 미디어 교육은 기존 체제를 유지한다는 한계와 최근 다가오는 매체환경의 변화속에서 감시와 비판의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써 대안매체에 대한 필요성과 가능성을 함께 가져다 준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바탕이 되는 우리 주변의 매체환경의 변화는 4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겠다.

   첫번째로 얘기할 수 있는 매체의 증가와 채널의 증가는 그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매체의 증가는 다양함이 보장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다양한 형식의 매체의 탄생과 증가는 그로 인해 수용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 뿐만 아니라 언론권력의 집중을 방지할 수 있다. 언론자유의 측면에서도 언론을 소유한 돈있는 사람과 언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힘있는 자들만의 것이 아닌 일반인들이 언론에 접근하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표하고 자신들의 주의나 주장을 펼 수 있는 적극적인 언론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다. 두 번째로 개인화(privatization)을 들 수 있다. 무한의 절대다수를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는 그 힘의 달콤함에서 헤어나지 못해왔다. 하지만 기술적 발전과 사회적 변화의 매체환경은 공용매체는 역할 감소와 함께 개인이 언제나 어디서든지 매체를 접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누구나 개인의 매체를 만들 수도 있고 수많은 매체들 가운데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각 개인의 직접적인 참여을 의미한다. 세 번째 쌍방향성 매체(interactivity)의 등장은 수용자의 능동성을 현실과 접목시키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방적 전달이 아닌 수용자가 선택을 할 수 있고, 개입을 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인 매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구화(globalization)와 지역화(localization)를 말할 수 있다. 점차 국적과 관계없이 매체를 접하게 되고 있다. 지구가 하나의 그물망처럼 얽혀 영향력을 서로 주고 받게 되면서 국가적 통제보다는 지역적 자치의 개념의 확산되고 있다.

 

  대안매체로써 감시,비판의 한계를 극복한다.

 

   이런 매체환경의 변화속에서 비민주적이고 불공정한 언론에 대한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은 대안적인 언론을 탄생시키고 육성하는 일이다. 우리는 수용자의 능동성을 실제로 가능하게끔 하는 여러 대안매체들을 만나게 된다. 강준만 교수가 「인물과 사상」을 통해서 시도하는 1인 저널리즘 문화와 인터넷 신문 「디지털 딴지일보」는 그 현실을 대변하는 구체적인 실례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언론의 거대 담론속에서는 논의가 불가능하던 사안들을 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고 평가된다. 또한 비디오저널리스트(VJ)의 등장과 소출력 라디오방송, 인터넷 방송(webcasting)의 가능성은 기존 매체의 구조를 뒤바꿔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방송의 가능성은 채널 수에 제한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운영 및 배급에 있어도 단지 몇대의 컴퓨터와 인터넷 전용회선이 필요할 뿐, 공중파 방송에 필요한 송출에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단순하다. 또한, 현재 인터넷 공간 역시 다양한 형태로 국가 차원의 규제와 자본의 간섭이 강화되고 있지만 기존 방송과 언론에 대한 규제에 비해 상당히 느슨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인터넷 방송의 환경은 대안매체로서 기능할 수 있는 공간과 여지들이 충분히 작용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런 대안매체 운동의 성격과 의미는 매체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능동적 수용자로써의 역할에 대한 기대와 함께 더불어 생각될 수 있다. 첫째, 미디어가 지니는 상호작용성과 쌍방향성을 인지하고 그들의 사회적 인간적 역할을 새롭게 규정하고 이용함으로써 이를 사회발전과 민주주의 실현에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둘째, 기존 미디어의 엘리트주의, 상업주의, 일방성, 획일성, 단순성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셋째, 민주적 가능성을 가진 새로운 기술들을 적극 활용하여 기술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넷째, 수용자의 자발적 유도를 꾀하여, 국가적으로는 물론 지역적 수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그들에게 문화적 정체성을 심어주고 일정한 힘을 실어준다. 다섯째, 변화된 사회현실에 맞게 성이나 인종, 그리고 계급이나 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한 접근을 통해 문화적 다원주의를 실현한다는 점이다.

   각 분야가 융합되어 창출해내는 대안매체는 이처럼 머지않아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매체와 채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하게 한다. 그 결과로 지역 서비스를 위한 하부구조의 창출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될 것이고, 다양한 문화적 표현수단의 제공되며 광범위한 계층에 대해 미디어가 보다 민주적으로 개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속에는 쉽지 않은 현실적인 고민이 깔려있다. 과연 한 사회의 전체 대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가 그 책임에 대한 의지가 있느냐는 문제이다. 사회적 하부구조의 구축에 역량을 모으는 수동적 수용자로의 위치를 벗어나고자 하는 대중들 자신, 제 3섹터의 시민·사회단체들의 기본적 토대로써 국가가 제 기능을 행사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언론을 개혁하지 못하면 사회개혁도 기대하지 못한다. 언론이 우리의 양심으로 깨어 있었다면 재벌들이 돈놀이하면서 민중의 자산을 갉아먹지도 않았을 것이고, 부패하고 무능한 독재정권들이 국가 부도에 이르도록 권좌에 앉아 연명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인간으로서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과 생존권이 짓밟히는 참혹한 상황으로 민중이 내몰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든 권력의 잘못된 행사에서 나오는 현실의 폐해에는 그를 비판해내고 감시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치 못한 언론권력의 잘못된 권력행사가 있었다.

   이에 우리는 언론에 대한 감시와 비판에 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형태로써의 참여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사회의 감시와 비판의 기능을 행하고 있는 언론이 이율배반적이게도 자신들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은 언론권력의 발전적 해체와 교체를 위해 노력해야 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이기도 하다. 우리는 수용자로써의 적극적 권리를 행사하여 언론권력에 대해 더욱 비판의 목소리를 높임은 물론 능동적인 대안언론에 대한 고민과 참여가 필요하다.

Posted by 정훈온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