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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제주2015. 12. 12. 16:23


제주도 여행 가면 우도는 많이 가봤지만 마라도나 가파도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남단이기도 하고 웬지 자장면 먹으러 마라도를 한번 가봐야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길지 않은 제주도 여행 중에 배타고 왔다갔다 하면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을까 싶어서 시도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이번에는 일행이 모두 제주도 몇번씩 가본 어른들이고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 시간을 고려해서 일정상 마라도 앞에 있는 가파도를 가보기로 했다.


제주도 모슬포항 인근에 마라도와 가파도 가는 여객선 대합실이 같이 있다. 매표소도 위 사진과 같이 붙어 있다. 모슬포항에서 가파도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고, 마라도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우리는 모슬포에서 11시 출발해서 가파도를 간 후에 가파도에서는 오후 2시 25분에 출발해서 다시 모슬포로 돌아오는 일정을 선택했다. 



배를 타기 전에는 승선신고서를 써야 한다. 물론 신분증도 꼭 지참해야 한다. 



모슬포와 가파도를 왕복하는 모슬포 2호 여객선



여객선은 2층짜리 배다. 위 사진은 1층 실내.



2층은 절반은 밖에 테이블이 있고



절반은 1층과 같이 실내 좌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슬포항을 뒤로 하고 배가 떠나고 있다.



출발한 지 몇분 지나지 않아서 뒤로 보이는 제주도 경관이 멋있다. 산방산과 송악산 등이 한 눈에 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배 앞 쪽을 보니 섬이 보인다. 가파도다. 가파도는 모슬포에서 거리는 얼마 안되지만 섬이 낮아서 한 눈에 잘 보이지는 않는다. 위 사진 오른쪽 수평선에 작게 보이는 곳이 마라도다.



모슬포항을 출발한 지 20분이 되지 않아서 가파도에 배가 들어간다.



가파도 선착장에 내리는 모슬포 2호.



모슬포 2호가 내려준 곳은 위 지도에서 제일 아래쪽에 있는 상동포구에 있는 가파도 선착장이다. 지도를 보면 굉장히 넓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동포구부터 반대편 하동포구까지 천천히 구경하면서 사진찍으면서 걸어도 30~40분이면 가는 거리다. 


가파도는 면적이 0.87km 이고, 해안선 길이가 4.2km이다. 2008년말 현재 인구는 312명(남 145명, 여 158명)이고 세대수는 132호이다. 경지 면적은 논은 거의 없고 밭 67.4ha이다. 주요 농산물은 고구마, 보리이다. 겨울 농사로 보리를 재배하고 여름 농사로 고구마 등을 재배한다.


주요 어획물로는 소라, 전복, 해조류, 해삼, 성게 등이 대부분이다. 해녀들에 의하여 김, 굴, 해삼, 전복, 소라 등이 채집된다. 근해에는 자리돔 어장이 형성되고 있다. 


법정 1개 마을인 가파도는 상동과 하동 등 2개 마을로 되어 있고, 북쪽에 위차한 하동포구(下洞浦口)는 연륙 교통의 요지로 항만시설이 되어 있으나, 간만차가 심하고 수심이 낮아 불편하다.



가파도는 청정 섬인 것을 강조한다.



상동포구에 내려서 하동포구 방향으로 왼쪽으로 해견 길을 따라서 천천히 걸었다. 



마침 날씨도 좋아서 제주도와 가파도의 맑은 자연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다.



가파도에는 제주 올레 10-1 코스가 있다. 가파도가 크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길이 올레길이나 다름 없긴 하다. 


제주에는 오름이나 봉이 아닌 산이 모두 7개다. 그 중 가파도에서는 제주도 동쪽인 표선 쪽에 있는 영주산을 제외한 한라산, 산방산, 송악산, 군산, 고근산, 단산 등 6개의 산을 볼 수 있다.



11월말에 찾아서 억새밭이 멋있게 펼쳐져 있다.



제단.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음력 2월달을 기점으로 기일을 택일하여 남자주민 대표 9명이 3박 4일 동안 몸을 정갈이 하고 정성껏 재물을 마련하여 하늘에 천제를 지내는 곳이다.



사진상으로는 멀어보이지만 직접 보면 그리 멀어보이지 않게 마라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직선 거리로 4km 정도 된다.



가파도는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로 이어져 있다.



하동마을 빨랫터


가파도는 1863년(철종말경) 주민이 살기 시작하면서 이곳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이요하여 식수 및 빨랫터로 활용하였다.

처음에는 상동마을에서 샘물을 발견하여 대다수 주민들이 상동마을에 주거하였으나 이곳에 샘물을 발견하여 상동마을에서 하동마을로 주거지를 옮기는 계기가 된 샘물이다. 현재는 해수담수시설과 삼다수로 생활용수와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불턱

불턱은 일종의 탈의실인데 해녀들이 물질을 하면서 옷을 갈아 입거나 불을 쬐며 쉬는 곳으로 공동체 의식을 나누는 공간이다. 화톳불과 그 의미가 유사한다, '불'은 글자 그대로 불씨를 뜻하며 '덕'은 불자리를 뜻한다.



가파도 파출소



연자방아 (연자매:硏子磨)

연자방아(연자매)는 소나 말의 힘을 이용하여 곡식의 이삭을 벗겨 내거나 가루를 내던 도구이다. 옛 제주 사람들은 ᄆᆞᆯ(말)방에, ᄆᆞᆯ고래, ᄆᆞᆯ그랑이라고도 불렀다.

보리나 조가 주곡식인 제주에서는 연자방아가 필수적인 농기구였따. 대부분 마을공동으로 제작하고 계를 조직하여 관리 운영하였는데 평균 30여 가구에 1기의 방아가 있었다.



가파리 종합복지회관



가파도에도 민가가 제법 있다.



가파 보건진료소



가파도는 탄소 없는 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체 풍력 발전으로 운영되고 있다.



가파도 한 가운데에 있는 가파초등학교 앞에는 회을공원이 있다. 이곳에는 김성숙 선생상이라는 동상이 서 있다. 


가파초등학교는 1946년에 설립되었는데 그 전신은 항일운동가이면서 해방 후 진보진영에 몸담아 정치활동을 펼친 명호(鳴呼) 김성숙(金成淑) 선생이 1922년에 세운 신유의숙(辛酉義塾)이다. 


김성숙 선생은 신유의숙(辛酉義塾)을 개설하여 김한정(金漢貞)·이신호(李辛祜)·장종식(張鍾植)·송종현(宋鍾炫)·이도일(李道一) 등 항일의식이 뚜렷한 인사들을 교사로 초빙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민족의식을 뚜렷이 갖도록 교육하였다.


1924년 신유의숙을 김한정에게 맡기고,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가 졸업후 귀국하여 협동조합 운동을 통하여 항일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후에는 중앙정계에서 중도 우파(右派)의 김규식(金奎植) 노선에 동조하였고 1955년에는 진보당(進步黨) 창당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0년에는 4·19 혁명 직후 한국사회당을 창당, 7·29 국회의원 총선거 때 남제주군선거구에서 제5대 민의원(民議院)으로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펴기도 하였다.


이후 한국사회당의 당수 전진한이 정계를 은퇴하자 당직을 승계, 이듬해 서상일·이동화 등 사회대중당 준비위원들과 고정훈·한왕윤 등의 사회혁신당을 통합하여 중도(中道) 혁신계 연합의 통일 사회당을 창당하여 활동하다 5·16 군사정변으로 구속되고 당은 해체되었다.



가파초등학교와 가파초등학교병설유치원이 함께 있다.



사실 가파도는 청보리밭으로 유명하다. 우리 일행이 찾았던 11월말은 사실 제일 비수기다. 넓은 청보리밭에는 이제 싹만 보이고 있었는데 보리가 한창이고 청보리 축제가 열리는 4~5월에 찾으면 정말 멋있을 것 같다.



가파초등학교 뒷 쪽으로 돌아가다 보면 폐 선풍기 날개와 돌로 조경을 해놓은 정원이 보인다.



청보리가 한창일 4~5월에 한번 다시 찾아야겠다.



일몰전망대

가파도에서 바라보는 일몰광경이 매우 웅장하고,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이 찬사를 보내는 곳이다. 이 위치는 가파도에서 가장 서쪽자리여서 수평선 너머 기울어져 가는 불타는 노을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장소이다.



가파도에도 돌이 많이 보인다.



해변에는 자줏빛 자갈이 많이 보여서 더 오묘한 느낌이 들게 한다.



탄소 없는 섬 프로젝트 차원으로 친환경섬을 표방한다. 차량이 별로 안보이기는 했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시간. 우리 일행을 다시 제주도 모슬포항으로 데리고 갈 배가 선착장으로 들어온다.



Posted by 정훈온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