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야기1999. 11. 6. 16:10

박정희의 PD수첩

 


MBC  <PD수첩-박정희를 만난 사람들> (10월26일 밤 11:00)

 

역사적 평가는 특정 개인이나 이익집단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없다. 객관적으로 그것이 그 당시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가 차분하고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제청산의 실패로 아직 그 잔재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대사에서 최근 몇 년간의 경제위기와 더불어 일어난 『박정희 신드롬』은 그의 공과를 더욱 냉철하게 분석하고 알려내야만 하는 현실을 절실히 인식하게 해준다. 

이런 가운데 방송의 사회비판기능의 대명사 역할을 해온 문화방송(MBC)의 <PD수첩>에서 인간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다뤘다. 

하지만 『PD수첩』-박정희를 만난 사람들 (MBC 10월26일 오후 11:00)편은 박정희에 대해서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친분이 있거나 가족들의 일방적인 평가만을 보여줌으로써 박정희에 대한 차분한 평가에 대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했다. 주관적이고 사적인 느낌을 역사적 평가화시킨다는 것은 박정희를 미화하려는 역사의 객관적 평가를 가로막는 처사로밖에 볼 수 없다.

 

주관적인 시각으로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켜

 

이 날 방송은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전혀 없음을 프로그램 기획의도와 인터뷰 대상자들을 통해서 분명히 드러낸다. 

누구보다도 긍정적·부정적 평가가 엇갈리는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가장 좋은 한국인 1위', '가장 정치를 잘한 역대 대통령 1위'라는 그 의도에서 한계가 드러나보이는 일부 매체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그 긍정적 평가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최근 정부가 밝힌 박정희 대통령 기념과 건립 국고 지원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과 민족문제연구소장의 인터뷰를 잠깐 보내준 것을 제외하면 이 날 방송에서 박정희 전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봤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장녀, 학교 동기, 경호과장, 비서관, 고향후배, 동료교사, 군대 상관, 군대 부관, 친구들이다. 가족이거나 박정희 개인에게 큰 힘이 되었던 사람과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던 그들은 사실상 박정희라는 역사적 인물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박정희를 '대단한 분', '훌륭한 분'이라고 추켜세우며 모든 행동을 정당화시켜 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개인적 친분관계가 없는 객관적 위치에 있는 인물도 박정희의 경제적 성과와 반민주성에 대한 여러 학문적 논란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김일영 교수(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마치 학문적으로 당연히 필요악적, 불가피한 것으로 규정짓는가 하면, 현재 특정 신문(조선일보)의 지면을 통해서 박정희 예찬론을 펼치고 있는 한 언론인(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의 평가만을 통해서 박정희에 대한 주관적 평가에 치중하였다. 

물론 방송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출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작업이 분명하게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당연하다. 그것이 역사적 평가와 관련되는 문제이기에 이 점은 더욱 중요하다. 이 날 방송에서 객관성을 상실한 점은 그 평가를 한 인물들이 한결같이 그와 친분관계가 두터운 사람들이었다는 것에서 증명되는 것이다.

 

노골적인 영웅화, 우상화

 

특히 이 날 방송은 박정희에 대해서 가까운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보는 차원을 넘어서서 인간 박정희를 영웅화, 우상화시키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삽교천 행사장에서 몇가지 좋지 않은 그런 게 있었죠. 헬리곱터 바람에 사슴이 넘어져서 숨졌다든가."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저하고 직접 인터폰이라도 통화를 하실려고 그렇게 찾으셨데요, 사방으로. 그러다가 안되니까 부속실에 오늘 식사하고 오니까 먼저 먹으라고 그리고 가셨다는 거예요. 그게 마지막이 됐죠."

"느닷없이 꿩 한 마리가 그대로 창가에 부딪쳐서 푸드득하고 피를 흘리면서 숨져가는 거예요. 창가 부딪쳐서 죽는 예가 없었어요, 그런 예가 내가 청와대에 그렇게 오래 있어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마치 고대 인물의 위인전기에나 나올법한 일화를 현대사의 인물에 대한 평가잣대로 들이대는 이런 장면에서는 아연 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평가의 잣대는 그의 모든 면을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해석하는 오류를 가져다 준다.

"10.26때 돌아가신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돌아가실 때 보십시오. 한 마디 말씀도 없습니다. 총을 맞았을 때 '야 경호원'하고 찾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분은 죽음에 대해서 구차하게 변명을 하거나 비굴하지 않습니다. 깨끗하게 총 맞으시고 그대로 돌아가신 겁니다."

그가 총애했다는 부하의 총탄에 숨져간 사건에 대해서 미화하기 바쁜 당시 경호과장의 말에 대해서 PD수첩은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도 꼿꼿한 군인의 자세를 잃지 않았던 박정희"

라며 그의 군인정신을 추켜세우는 일방적 편견을 드러낸다.

 

친일행적도 정당화시키기에 급급

 

이 날 방송은 박정희를 둘러싼 친일행적과 관련한 증거들도 모두 정당화시켜 버린다.

"경북대에 남아있는 동기생들의 학적부를 살펴보았습니다. 항일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많은 학생들이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혀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 박정희는 일본인 선생들로부터 민족감정과 관련된 어떠한 평가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항일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혀 있었는데 박정희는 그런 평가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달하면서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는다. 박정희에 대해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일관하는 이 프로그램 속에서 이는 학생 박정희가 민족감정과 관련해 그런 평가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치 긍정적이고 다른 항일운동에 참여한 동기생들이 문제가 있는 듯이 보여지게 한다.

또한 엄연히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친일행적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지나치게 보인다.

"일제시대 말기, 대부분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박정희는 일본 군인이 됨으로써 힘과 권력을 얻고 싶어 했습니다."

"일본 천황에게 피로서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그는 만주군관학교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사범학교 시절 꼴찌를 맴돌던 그는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금의환향합니다."

"그러나 해방은 박정희에겐 오히려 시련이 됩니다. 고향에서 대대적 환영을 받았던 일본군 장교의 신분이 비난과 조사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힘과 권력을 얻기 위해서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해방이 오히려 시련이 되는 인물에게 이 날 <PD수첩>은 이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랬다고 호도하고 박정희의 친일행적을 정당화시킨다.

 

인물에 대한 주관적 평가로 일관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는 박정희라는 인물의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그의 인간상을 알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물의 여러 성격에 대해서 모두 주관적 관점에서 찬양일색이다.

"그는 아주 매섭고 강인한 군인의 인상을 풍기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 또한 단호하고 강단있는 기세를 느끼게 합니다."

"신념에 가득찬 그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남한테 나서는 일을 꺼리고 부끄럼 잘타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굉장히 자상하고 아주 정스러운 그런거를 많이 느껴요"

"목숨을 걸고, 언제 죽을 지 모를 정도의 혁명을 하신 분인데 그러면서도 아주 세밀한 청와대 청소부까지 챙기시는 그것도 세밀함이거든요"

인생의 고비마다 술이 좋은 친구였다든가, 국가원수의 체면도 잊은채 아내 시신이 있는 방 입구에서 대성통곡을 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든가, 장모의 생일을 챙기는 장면들은 지극히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를 마치 박정희도 그런 따뜻함을 갖추었다면서 인간적 면모의 특징으로 추켜세우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양념화된 부정적인 평가, 그 조차도 무시하고 긍정적으로 호도

 

이 날 방송에서 박정희에 대해 부정적인 면을 보여준 것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김봉우 소장)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경제개발에 대한 평가도 합리적이지 못하고 외자에 의존하는 재벌을 통한 소수의 경제주체를 만들어내어 오늘의 IMF위기를 원인을 만들어냈다는 평가가 있다면서 경제성장률 세계 1위의 뒤안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인권을 탄압하던 독재의 그늘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한 대목 뿐이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구색맞추기식 이상은 아니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박정희 시대에도 부정부패는 없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박정희가 부하들의 비리사실에는 매우 관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얘기는 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대 상황에서의 선택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해버린다. 결국 그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각종 비리와 경제위기, 문화정체성 상실의 출발점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그 시대에서 박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깨끗함을 가지고 모든 부하들한테 강제시켜 가지고 거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숙청하고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본인은 알았습니다. 거기에 박대통령의 고민이 있었다고 봅니다."

 

현 정권의 한 축이자 국무총리가 박정희 정권 당시도 국무총리를 지냈고 그로부터 총애를 받던 부하였으며, 공동정권의 대표가 당시 포항제철 사장 출신이라는 우리의 정치 현실속에서 박정희의 과오와 업적을 분명히 더욱더 객관적이고 면밀히 검토하고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 이 날 <PD수첩>은 클로징멘트에서 말한다.

"5.16으로 시작하여 10.26으로 끝나버린 박정희 시대,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진행중에 있습니다. 이제라도 격동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정치가로서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다간 한 인간으로서 그에 대한 차분한 평가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의 18년 시대를 말하지 않고는 우리 현대사를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날 방송은 박정희에 대해서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친분이 있거나 가족들의 일방적인 평가만을 보여줌으로써 박정희에 대한 차분한 평가에 대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했다. 18년동안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던 박정희는 우리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주관적이고 사적인 느낌을 역사적 평가화시킨다는 것은 박정희를 미화하려는 오히려 역사의 객관적 평가를 가로막는 처사로밖에 볼 수 없다. 



Posted by 정훈온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