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권력과 안보상업주의
강 정 훈
권력이라는 개념은 독립적일 수가 없다. 그 힘이 행사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권력이라는 개념이 생길 수 있다. 힘있는 자들의 힘없는 자들에 대한 착취 구조를 그 속성으로 하는 것이다. 힘있는 자들은 사회적인 효율성과 공공의 이익을 이유로 내세우며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그 권력을 정당화시킨다. 권력의 대상이 되는 이들이 그런 착취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그 권력에 대하여 비판할 수 있는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 비판기능을 행사할 수 있는 또다른 권력을 만들었다. 바로 언론이라는 권력이다. 하지만 정작 언론권력 자신은 어느 누구에게도 비판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꾀하고자 언론의 기능인 권력에 대한 올바른 비판조차 외면해버린다.
일제 잔재와 미제의 굴레가 섞여진 지금까지 우리 현대사의 굴곡된 모습은 그를 증명하는 현실이다. 국민 대다수를 속여가면서 힘있는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또다른 이기적 권력행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나를 보여준다. 한국 현대사는 권언유착의 고질적 병폐를 이기지 못하고 시대적 오류를 거듭해왔고 언론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해 버리거나 억압에 굴복하여 펜대를 꺾어 버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서 벌어진 권력의 독재와 독점재벌의 횡포에 언론은 충실한 여론조성 역할을 자임해 왔었기에 그로인해 현재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구조와 문제점에 결코 그 책임을 저버릴 수 없는 것이다.
대다수 일반 대중들은 이런 언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수용받게 된다. 특히 여러 보도 대상들 중에서 북한과 통일 관련 보도는 매스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를 여과없이 수용하게 된다. 즉, 북한을 이해하는 유일한 정보원으로서 매스미디어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언론이 전달하는 보도를 통하여 북한을 이해하고, 통일 문제에 대한 개인의 이미지와 생각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통일과 북한에 관련된 사회현실을 바로 알고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데에는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언론은 그런 역할을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남북관계를 경색시키고 자신들의 상업적 이익에 이용하는 술책을 벌이고 있다.
최근 이런 모습이 극명하게 나타난 사건이 지난 6.15 서해교전이다. 이번 사태는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통일기반 조성 못지 않게 남쪽내의 통일기반 조성이 통일정책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절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 신문과 방송의 서해안 보도를 보면 서해안의 '전운'이 곧 한반도 전체를 휩쌀 것 같은 느낌이다. 실지로 서해안 사건이 터지고 난 직후 "전쟁 났다며?" "서해에서 전쟁이 터졌데."하는 식의 이야기를 길거리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이는 대부분의 언론이 서해안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 1면 사진부터 시작하여, 제목, 기사 내용에 있어 "마치 전쟁이 터진 듯" 쓴데서 온 부정적 여론 조성현상이다.
"서해교전, 북 어뢰정 격침" "포탄 우박, 5분만에 격퇴 끝" '북, 보복공격 우려, 군 준 전시태세로' "귀찢는 포성, 전쟁터지나"(중앙일보), "북 어뢰정 1척 격침...미군 증강키로" "소나기 함포, 5분만에 상황끝" '긴박했던 격전의 순간' '긴급. 긴급 준 전시상태 돌입'(동아일보), "북 함정 1척 격침, 5척 대파" "하늘 찢는 꽝꽝꽝 5분, 북 어뢰정 불기둥", "서해교전, 북 어뢰정 침몰" '서해 5도 전투 대비령, 준 전시상황 돌입' '76mm함포, 북 어뢰정 명중...화염치솟아' '북 어뢰정, 10여분만에 불기둥속 침몰'(조선일보), "서해교전, 북 함정 1척 격침" "밀어내기 충돌 중, 북 기관포 꽝"(한겨레) '5분만에 격퇴, 전군 비상령' '계획된 도발?'(KBS)
대부분의 보도내용이 이러한 제목들과 함께 거대한 함포사진, 교전 일지 및 그림 설명 등과 함께 "서해안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는 식으로 시작되고 있다. "전운이 감도는 서해연안에는 귀신잡는 해병이 물샐틈 없는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북녘을 향한 총구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공군도 초 긴장상태에 돌입했습니다"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서부전전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속에...."(KBS 9시뉴스) "그동안 적과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까맣게 잊고 살아온 것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습니다" "한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장병들은 북측을 응시하며 경계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습니다" "북한이 피해에 대한 보복으로 새로운 도발을 해올 가능성....""북한이 총격전을 이끌어내기 위해 충돌 공격 감행...."(이상 SBS)등은 현재 진행중인 전쟁을 중계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실지로 서해안사건이 터졌을 때 관련기사를 쓴 기자들은 거의 그 자리에 있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과연 우리 언론이 이렇게 중요한 사안에 대해 이래도 되는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결과적으로 전세계에 분쟁지역으로 인정된 북방한계선의 경우 언론은 53년 휴전당시 유엔사가 북측에 통보를 했고, 남북기본합의서 11조에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고 이미 합의했기 때문에 재론할 가치가 없는 것이고 북도 암묵적으로 지켜온 사항인데 갑자기 생떼를 쓰는 것처럼 보도하였다.
하지만 이미 알려진 대로 휴전협정 어느 곳에서도 북방한계선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단지 제해권을 미국이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정전협정 13조 2항은 "단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모든 섬 중에서 유엔 군사통제하에 남겨두는 5도를 제외한 기타 모든 섬들은 북한인민군총사령관과 ... 군사통제하에 둔다. 서해안에 있어서 상기 경계선 이남에 있는 모든 섬들은 [유엔]의 군사통제하에 남겨둔다"라고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이 한계선은 클라크 주한미군사령관에 의해 유엔군의 북상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방적으로 설정된 것이다. 북한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73년 12월 북한은 군사정전위에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여 "서해 5개 도서의 해역이 북한군의 통제를 받는 곳으로 이 섬들을 드나들 때는 북한군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후 북한은 "북한의 12해리 영해 안에 있는 북방한계선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해마다 20~30건의 월선을 감행해 분쟁지역화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들 중에 언론은 우리 해역임을 주장하는 사실만 부각시켜 북의 침범과 도발을 규탄하고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일관했다. 6월 7일 북한의 북방한계선 월선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냉정한 대응을 구사하던 정부가 '영해침범', '국토수호'라는 극단적인 선동구호를 외치며 벌떼같이 날뛰는 언론들과 일부 정치권의 정략적인 정치쟁점화에 힘없이 무너지면서 무력충돌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사흘만에 여론에 굴복한 정부가 6월 10일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여 "북한이 우리를 자극하고는 있지만 적대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다"는 기존의 합리적인 대처방안에서 "NLL을 지상의 군사분계선과 같이 확고하게 지킬 것"이라고 강경대응으로 방향선회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강력 대응'을 자제하던 군 당국이 11일 북한경비정을 밀어내기 위하여 경비정의 뒷머리를 들어 박는 선제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에 북한 경비정 4척이 커다란 손상을 입었지만 북한은 군당국의 발표대로 소극적인 대응을 하였다. '매운맛'을 보여주었다는 언론의 무책임한 냄비식 여론조장의 부추김에 우쭐했던지 국방부는 13일 '영해침범 즉각 중단 촉구하고 중단 않으면 응징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14일에는 국방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북 경비정을 차단 위해 한계선 봉쇄 작전'을 천명하였다. 이 작전명령에 따라 15일 남한 함선들이 북한 함선들을 포위하고 충돌식 밀어내기 선제공격을 감행하였고 이에 밀리던 북한 경비정이 남쪽 초계함에 기관포 선제사격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나 남쪽은 기관포와 함포 등으로 응사하여 북한군 30명의 전사자를 내고, 북한 의뢰정 1척을 바로 격침시키고 2척을 대파시킨 것이다.
이 교전상황에서 만약 북한이 자제력을 잃었다면 한반도는 전면전 상태로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별다른 대화통로를 가지고 있지 못한 남북관계는 자그만 행위하나가 점화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언론은 서해의 대치, 충돌과정에서 이런 점을 지적하고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하기보다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우월감을 만끽할 뿐 이후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번 서해교전 사건의 언론보도를 통해 우리는 다시한번 언론의 대북, 통일관을 점검해볼 수 있다. 한국 언론의 북한 및 통일관련 보도들은 근본적으로 '반공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삼고 있다. 즉, 냉전논리를 바탕으로, '적'과의 대치상태라는 상황을 전제로 보도를 함으로써 항상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자극하고, 긴장을 유발하고 있다. '서해교전' 사태가 벌어지자마자 일반인들이 '전쟁이 일어났다'라고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불안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언론의 보도관행에 길들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현재의 한국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는 반통일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언론은 특히 통일을 지향하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보도보다는 선정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치우치는 상업적 보도로 북한을 이용하고 있다.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유지하며 세계적으로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마지막 남은 화약고와도 같은 상태이다. 이에 따른 국민들의 불안감과 '북한관련 보도는 오보를 해도 상관없다'는 사고가 결합되어 안보를 장삿속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 언론 중에서도 특별하게 생각해야 할 매체가 조선일보라는 신문이다. 조선일보는 마치 이 나라의 사상검증을 책임진 '전사'처럼 수없이 현상을 왜곡, 과장해왔다. 이러한 태도는 '체제도 수호하고 신문도 팔자'는 발상으로 여겨진다. 북한과의 대립적 여론조성의 경위를 살펴보면 조선일보의 주도적인 왜곡이 있은 후에 다른 언론매체들도 그 상업적 산술계산에 발맞추어 여론몰이를 해나간 것을 알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성혜림 망명사건 보도(96년 2월 13일 이후)이다. 망명 여부가 확인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모든 언론은 '성혜림이 망명했다'고 특종으로 보도하면서 추측에 근거한 보도를 남발하며 상업성 추구에만 매달렸다. 또한 서울 불바다 발언(94년 3월)과 관련해서도 팀스피리트훈련 재개 등 당시 전후관계는 거두절미한 채 '서울 불바다'라는 표현만을 집중 부각시켜 전쟁분위기 조성에 열을 올렸다. 집단적 광신주의를 부추겨 세계적인 웃음거리를 제공한 금강산댐 평화의 댐 관련 보도(86년 10월 31일자)를 보면 조선일보는 '조국통일을 뇌까리는', '악마의 목적', '악마적 기도', '북괴', '무기화', '물의 남침' 등 어느 신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저속하고 섬뜩한 용어로 반북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앞장섰던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보도관행은 비단 조선일보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작 문제는 이런 조선일보의 왜곡에 여타의 언론매체들이 그대로 동조하고 묵인한다는 사실일지 모른다. 이는 국가안보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상업성을 추구하려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병폐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하겠다. 남북간의 충돌이 빚어질 때마다 마치 전쟁영화처럼 자극성을 배가하여 드라마틱하게 소설을 써간다. 남북관계에서 진정 중요한 사건들의 발생원인이나 역사적 흐름 같은 심층분석보다 충격적으로 부각시켜 확대하여 이질감을 강조하고 적대시하는데 열중하는 언론은 통일지향은 커녕 대결과 충돌, 분쟁거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신문 수익구조는 절대적으로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 방송 또한 공익적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청률에 매몰되어 있는 현실이다. 이에 언론은 자신들의 신문과 방송프로그램을 팔아먹기 위해 위기를 부추기는 것 이상 좋은 게 없을 것이다. 이에 남북문제는 그들의 장사에 가장 안전한 카드로 이용되고 있다. 안전하다는 현실은 정확한 취재를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없이 무조건 북한을 적대적으로 묘사해도 아무런 탈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거기에 '애국심'이니 '현실주의'라는 명분까지 들먹이면서 왜곡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비판기능을 위해 일정의 힘을 위임받은 언론이라는 권력은 그 권리를 자신들의 장삿속 채우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민족화해와 통합으로 이끄는 민족통일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처럼 '안보'마저도 제 잇속 채우기에 이용해먹는 언론권력의 장삿속은 북한을 내부 식민지화하여 민족분열적 통일로 이끌어가는 것이외의 다름이 아니다. 언론은 냉전시대에 형성된 선입관과 편견에서 벗어나 북한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인식함으로써 남북 사이의 공감대를 넓혀 나가고, 오랜 분단의 역사 속에 증폭된 갈등과 적대감을 해소하고 화해와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언론을 개혁하지 못하면 사회개혁도 기대하지 못한다. 언론이 우리의 양심으로 깨어 있었다면 재벌들이 돈놀이하면서 민중의 자산을 갉아먹지도 않았을 것이고, 부패하고 무능한 독재정권들이 국가 부도에 이르도록 권좌에 앉아 연명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인간으로서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과 생존권이 짓밟히는 참혹한 상황으로 민중이 내몰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든 권력의 잘못된 행사에서 나오는 현실의 폐해에는 그를 비판해내고 감시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치 못한 언론권력의 잘못된 권력행사가 있었다.
이에 우리는 언론에 대한 감시와 비판에 관심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들 역시 힘을 가지고 행사하고 있는 권력이기에 작은 비판의 목소리마저 외면하고 있는 언론권력에 대해 더욱 비판의 목소리를 높임은 물론 언론권력의 발전적 해체와 교체를 위해 노력해야하는 당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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