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야기2012. 3. 26. 15:31

언론사 파업과 직업의 의미

우리 사회는 파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파업을 포함한 노동쟁의는 엄연한 합법적 행위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일정 절차를 거치면 쟁의를 할 수 있도록 명시되어 있다. 헌법에서도 근로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물론 파업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권리라고 하지만 파업 당사자들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게 만든다. 그 기간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해서 그 가정의 평화가 깨지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회사 측은 그 갈등관계에 따라서 온갖 회유와 압박을 하면서 징계를 예고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압류와 손해배상소송 청구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MBC, KBS, YTN, 그리고 연합뉴스, 국민일보까지 한꺼번에 많은 언론사들이 파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MBC는 김재철 사장의 퇴출과 공정방송 복원을 위해서 파업에 돌입한 지 벌써 50일이 넘어섰고, 3월 6일부터는 김인규 사장 퇴직과 공정방송 회복을 위해서 KBS 새노조가 파업에 돌입했다. 이명박 정권 초기 이미 파업 과정에서 6명의 해직자가 발생한 YTN도 배석규 사장 연임 저지를 위해서 파업에 돌입했고, 연합뉴스도 박정찬 사장 취임 이후 불공정 보도, 사내 민주주의 퇴보, 인사 전횡을 겪어왔다면서 연임 저지를 위해서 23년 만에 전면총파업에 돌입한 상태다. 국민일보도 조민제 사장 퇴직과 편집권 독립을 외치면 장기파업 중이다.

이번 언론사 파업은 이명박 정권 말기 언론 정상화를 위해 역량을 결집하는 사회적 의미가 있지만 파업을 하는 당사자 개인들 입장에서의 또 다른 의미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학이 취업준비 학원이 되었다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되었을 정도로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목표가 되고 있다. 지금 파업 중인 언론사들은 여느 대기업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취업하기 희망하는 회사들이고, 특히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기자와 PD 같은 언론 전문직 종사자들은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는 엘리트로써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많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파업을 한다. 왜 일까? 

이번 파업은 여느 기업의 임금협상이나 근로조건과 관련한 단체협상 중의 의견 차이로 벌어지는 쟁의행위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가치, 특히 언론의 사회적 역할의 관점에서 중요하게 바라봐야 한다. 모두 공영방송이거나 공정보도가 중요한 보도전문채널에서 모두 정권에 의한 낙하산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회복,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노조는 이번 파업의 출발점을 낙하산 사장의 임명 이후 계속된 왜곡·편파 보도에 대한 구성원의 굴욕감과 분노라고 표현했다. 

한미FTA, 4대강, BBK,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논란, 조중동 족벌언론의 종합편성채널 승인, 각종 선거 등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는 사안마다 사회적 공기로써 여론 조성을 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 언론이 그 사회적 역할을 방기하고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른 인사와 보도통제를 통해서 관제·어용매체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언론은 사회를 감시하는 파수견 역할을 한다. 정치 권력, 자본 권력의 힘에 억눌려 제대로 된 감시를 하지 못하고 이해관계에 따라서 그 역할을 왜곡시킬 때 언론의 사회적 역할은 포기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기자, PD 같은 전문직으로써의 언론인이 아니라 그냥 방송사, 신문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사에 다닌다고 언론인이 아니다.

직업을 가지고 취업을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개개인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아서 본인과 가족의 경제생활을 영위하게 해주는 경제적 측면 이외에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분담된 기능을 수행하며, 자아실현의 장으로써의 기능도 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낙하산 사장들은 개인의 경제적인 직업의 가치로 겁박하여 사회 구성원으로써의 떳떳한 직업의 의미, 자아실현의 장으로써의 직업의 의미를 왜곡·편파 보도와 편성으로 왜곡시켜 왔다. 이를 더 이상 못 참고 항거하기 위해서 나선 것이 이번 파업의 의미이다.

이런 직업의 의미에 대한 성찰은 꼭 언론사 종사자에 국한되어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회사라도, 또 사람들이 모여 있는 어느 조직에서라도 이해관계는 상출될 수 있고 그에 따른 판단을 할 지렛대 위에 놓이게 된다. 그때 어떠한 판단을 할 것인가? 꼭 언론인이 아니더라도 여느 누구라도 그 주어질 수 있는 질문이다.

(※ 위 글은 '단대신문'(단국대신문) 2012년 3월 20일자에 기고된 글입니다.)


Posted by 정훈온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