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야기/영화2008. 4. 5. 23:36

식코(SiCKO)
개봉일이 바로 다음날이고 금요일 저녁인데도 영화 예매하기가 쉽지 않았다. 매진 때문에? 아니다. 개봉관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영화 시작 30분 정도 전에 극장에 도착했는데 전회를 본 관객들이 나온다. 약 40여명은 되어 보인다.

자기들끼리 얘기한다. 영화가 좋단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하면서 꼭 보란다.

그런데 좀 지나자 금방 눈치챌수 있다. 그들 대부분은 단체 관람이었다. 일반인과 학생들이 섞여 있었는데 집회에서 몇명이 끌려가고 다음날 스터디를 하고... 뭐 그런 얘기들을 한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극장으로 들어섰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20명이 채 안되어 보였다.

영화의 첫 장면은 골 때린다. 무릎이 찢어진 사람이 자기 집에서 자기가 직접 꿰맨다.

'식코', 환자 또는 앓던 이라는 뜻의 속어다. 마이클 무어의 '식코'는 미국의 민영 의료보험 체계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미국 3억 인구 중에서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5천만명, 그리고 가입되어 있는 2억5천만명도 민영 의료보험 회사들 중심으로 운영되는 의료체계로 인한 폐해를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요즘 민영 의료보험 얘기가 나오는 모양인데 이 영화 보면 그런 생각 싹 달아날 것이다.

'식코'는 꼭 의료보험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그런 현실이 가능한 미국의 사고방식과 문제점을 보여준다. 언뜻 미국은 문제고 유럽은 좋은 나라라는 식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들은 그것만은 아니다.

민영 의료보험으로 인한 폐해를 상당수 미국인들이 과연 모를까? 아니면 마이클 무어가 폐해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은 아닐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은 미국인들은 미국의 현실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정치권력을 선택한다. 미국이 부시를 선택했고, 우리나라가 이명박을 선택했던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손가락 봉합수술하는 데 미국에서는 한 손가락에 12만달러, 프랑스는 5손가락 모두를 봉합했는데 무료다. 왜 그런 차이가 날까? 의료보험 제도의 차이라면 왜 미국인들은 이걸 바꾸지 못하고 있는가? 이걸 바꾸려고 했던 힐러리 클린턴은 실패 이후에 왜 다시 언급조차 못하고 있을까?

식코(SiCKO)
내 가슴과 머리를 찌릿하게 와닿았던 부분은 이 미국과 프랑스의 차이점에 대해서 명확히 집어주는 장면이었다.

프랑스는 정부와 정치인들이 국민을 두려워하고, 미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잘못된 것이 있고, 불만이 있을 때 프랑스 국민들은 모여서 항의를 했고,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마이클 무어는 내 머리 속을 너무나 시원하게 긁어줬다.

모두 자기 주변의 조직과 사회, 국가를 돌아보자. 어디서 많이 본 풍경 아닌가?

잘못된 것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 당장 자기자신에 큰 피해가 없으면 그냥 뭉개버리고 어물쩡 넘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뒤에서는 모두가 현실을 궁시렁거리면서 바로 잡으려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그 권력에 올라타 자신의 이기만 취하려는 모습만이 넘친다. 그러고 나서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은 튀는 사람 취급을 한다.

그래서 '식코'는 미국 의료보험 체계만을 비판하는 영화가 아닌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저 영화를 얼마나 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 영화를 보면서 뭘 느낄까? 나와 함께 같이 영화를 본 사람의 느낌은 미국에 가기 싫단다. 하지만 개봉된 극장도 많이 없고 극장안에도 사람이 별로 없다. 마케팅과 자본이 없고, 재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때문 일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 무어의 재치와 구성력은 기가 막힐 정도다. 다큐멘터리이면서도 전혀 딱딱하지도 않고 무겁지 않다. 너무나 영화답다.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미국적인 영화다. 이 영화도 미국 성조기가 펄럭인다. 날라다니는 사람들이 없고 총쏘는 사람이 없긴 하지만 허황되지 않는 너무나 진실된 미국의 영화다.

식코 (SiCKO, 2007)
장르 : 다큐멘터리
개봉일 : 2008.04.03
런닝타임 : 120분
제작국가 : 미국
등급 : 12세 관람가
제작/감독/각본 : 마이클 무어

Posted by 정훈온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