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2008. 4. 4. 16:11

KTH가 2008년 메가TV 운영 계약을 체결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그 계약을 담당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도 몇년동안 계약이라는 것과 씨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난 우리 회사의 모기업 홈페이지 운영을 담당했었는데 2003년 연간계약을 위해서 2002년말에 꾸려진 협상팀에 참여했다. 당시 내가 맡고 있던 업무가 자질구레하게 걸려 있는 부분도 많고 사람도 많아서 엮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실질적인 데이터를 취합해주고 실무적인 현실을 계약 담당하는 부서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04년 계약에 관한 논의가 시작될때는 전년의 협상팀에 있던 사람이 몇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얼떨결에 계약의 실무 가이드라인을 사실상 내가 맡아서 했다. 그리고 2005년과 2006년, 2007년으로 이어지면서는 그게 내 주된 업무가 되고 책임도 지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몇년 협상을 하고 계약을 체결했지만 사실 제대로 된 협상이라고 할 수 없었다. 모기업의 책정된 예산에 껴맞추는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도 주머니에 없는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甲과 乙의 관계, 아니 하청을 받는 수직 관계에서 협상이라는 것은 그냥 1년을 새롭게 정리한다는 의미밖에 없었다.

작년 봄, 새로 옮긴 팀도 기본적인 사업 틀거리는 1년 단위의 연간계약이다. 여기나 저기나 기왕 계속 서비스하는 거 왜 1년 마다 협상을 다시 하고 재계약을 하는지 이해가 안가기도 한다.

어제 그제 본격적인 협상 테이블이 시작됐다. 몇년동안 상대해왔던 모기업과는 다른 시장의 새로운 상대들을 만났다. 협상 구도도 전혀 새롭다. 한쪽은 경쟁관계에 있는 동종 업체가 한 배를 타고 공조를 한다. 상대방도 경쟁관계지만 그동안 대오가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조를 취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뒤로 어느 정도 입장을 맞춘 게 느껴진다.

협상 테이블은 두군데 꾸려졌다. 각각으로부터 첫번째 카드를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패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만큼 첫번째 만난 카드의 패는 강했다. 무모하게마저 보인다. 자칫 판이 깨질 수도 있어 보인다. 정말 판을 깨려는 것일까?

저 카드가 뻥카일까? 아닐까? 머리를 굴린다. 그냥 항복을 선언할까? 아니면 같이 랠리를 할까? 상대방의 카드가 뻥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주변 여건이 너무 안좋다. 내가 생각해도 입장을 바꿔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앗차! 다른 테이블에서 빈틈이 보인다. 판을 깨자면서 현재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뻥카가 들킨 것이다. 내가 센 패를 들고 있을까봐 미리 담금질하는 것이다. 그 뻥카에는 또다른 뻥카로 대응한다. 그러다가 뻥카가 통하면 나는 대박나는거고, 그게 뻥카가 아니면 판을 깨는 수밖에 없다.

기왕 나는 그 패를 받아들 수 없다. 그 패를 받아들이는 건 나에게 쪽빡을 의미하고 그 판을 계속 지속할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상대방의 첫번째 카드를 뻥카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가 내밀 카드는 뻥카가 아니다. 뻥카이면서도 뻥카가 아닌게 되는 거다. 내가 뻥카를 칠때 포커페이스를 어떻게 할지만 남은 것이다.

Posted by 정훈온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