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야기1999. 5. 13. 16:02

박범수 기자와 박덕남씨의 인터뷰, 그 이후(지하철파업보도관련)

 

이번 지하철 파업과 관련한 언론의 의도적인 왜곡보도와 관련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87년이후 처음으로 기자와 카메라에 돌세례가 가해지고, 한 켠에서는 80년 5월 광주의 언론보도이후 전형적인 왜곡보도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언론 보도의 의도적인 왜곡 논란은 끊임없이 있어왔지만 정권교체라는 기대감과 새로운 방송법 논란, 국정홍보처 신설 문제 등과 겹쳐서 이번 지하철 파업보도의 왜곡 문제는 더 큰 의미를 가져다준다. 이와 관련해서 지적해야 될 여러 가지 사례가 있지만 우리가 새로운 차원에서 주의깊게 살펴봐야 될 사례가 하나 있어 얘기해 본다.


지난 4월 24일 MBC 뉴스데스크는 "겉으론 평온"이라는 제목으로 박범수 기자의 리포트를 내보냈다. 


이 날 박범수 기자는 서울대의 농성현장을 리포트 하면서 대체로 평온하지만 공권력 투입에 대한 긴장감이 베어있다고 하면서 주말을 맞아 농성장을 방문한 가족과 재회를 하는 장면을 리포트 한다. 그리고 한 켠에서 파업결의를 다지는 토론회를 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고 한 뒤 박덕남씨 부부의 파국으로 가지 않고 빨리 직장에 들어가서 시민들에게 서비스하고 싶다는 인터뷰 내용을 내보낸다. 


문제는 이 인터뷰가 방송된 뒤 인터뷰 당사자인 박덕남씨가 PC통신과 미디어오늘, 한겨레신문 등을 통해서 인터뷰의 왜곡을 주장한데서부터 시작된다. 박덕남씨는 취재진이 '공권력투입이 임박한 시점에서 조합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하고 농성장을 스케치하겠다'는 취지의 설명을 덧붙이며 노조원들의 입장에서 본 파업의 입장과 농성장의 모습, 서울시와 공사 관계자의 위압적 행태 등에 대해서 인터뷰했다고 한다. 하지만 뉴스로 나간 부분은 취재말미에 기자가 부탁한 '업무복귀를 원한다'는 말과 함께 아내가 '긴장된다'는 불안한 심리를 부각시킨 내용뿐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후 박범수 기자의 리포트는 지하철 파업과 관련한 대표적인 왜곡보도 사례로 여기저기서 인용되었다. 인터뷰 당사자가 자신의 뜻을 왜곡해서 리포트한 것이라고 하는 데 더 이상의 여지가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박덕남씨의 반론에서 끝나지 않았다. 인터뷰했던 당사자인 박범수 기자가 5월 12일자 미디어오늘을 통해서 박덕남씨의 반론에 대해 조목조목 재반론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다. 그 내용의 대강은 이렇다. 박범수 기자의 재반론의 요지는 네가지다. 첫째, 자신은 시민들에게 비춰진 강성노조원들보다는 인간적으로 고민하는 노조원의 모습을 다루고 싶었고 그를 통해 농성 노조원들이 별종이 아닌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 시민들에게 더욱 설득력 있다고 판단하여 '복귀를 원한다'라는 완곡한 표현의 인터뷰를 방송했다는 것이다. 둘째, 취재말미에 추가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세한 내용까지 부탁하지는 않았고 진심이라고 판단했으며, 박씨의 나머지 인터뷰들은 평조합원의 생각이라기 보다 간부의 입장인 것이 많아 적절치 못했으며 나머지 내용에 부합되는 것들도 30초 이상으로 길어서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셋째, 박덕남씨는 취재요청시 조합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하겠다며 취재요청을 했다지만 기자 자신은 조합의 입장보다는 평 조합원의 입장을 취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넷째, 박덕남씨의 반론이 알려진 후 기자와 통화해서 박덕남씨가 직접 보도를 본 것이 아니라 기사만 인터넷을 통해 봤다고 한 것에 대해서 직접 보고 듣지 않은 상태에서 기사만 본다면 잘 알 수 없는 게 방송뉴스라며 박씨의 경솔함이라고 재반론 했다. 결론적으로 박범수 기자는 이 보도와 관련해서 사과할 마음이 없으며 소신있는 보도였다고 하면서도 다만 이번 지하철 보도가 전반적으로 냉정한 틀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한다며, 이 부분은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하였다.


나름대로 박범수 기자의 선의(?)를 이해할 수 있다. 또 인터뷰 당사자라고 해도 박덕남씨도 일정의 착오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과할 마음이 없다'는 박범수 기자는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듯 하다. 

방송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자의 작품이 아니라 보고 듣는 자의 앎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자의 의도가 어떠한가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의도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서 전파를 타고 대중들에게 전달되었을 때의 결과가 더욱 중요한 것은 자명하다. 


또한 특히 사회의 쟁점이 되는 사안의 보도와 관련해서는 그 보도 자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방송이 보도된 후 여러 입장의 이해 당사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그리고 '대중들은 그를 어떻게 평가해 여론이 어떤 방향으로 형성될 것이냐.' 하는 것들이 그 방송의 사회적 배경과 맞물려 이해된다. 


논란이 되는 박범수 기자의 리포트가 있었던 시기의 지하철 파업과 관련한 사회 분위기를 보자. 언론은 신문이나 방송이나 할 것 없이 노조원들의 파업논리에는 귀를 막고 '시민의 발'을 묶는 파업이라 비판하기에 정신이 없다. 이 점은 박범수 기자도 어느 정도 인정했다. 언론은 지하철 고장 사고를 파업 노조원들이 고의로 그런 것인양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또 파업이 진행된 후 서울시와 공사측의 복귀종용에도 불구하고 복귀율이 저조하자 일부 강경 노조원들이 파업이탈을 강제로 막아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어떠한 객관적인 근거도 제시되지 않은 채...


박범수 기자가 리포트했던 4월 24일의 서울대의 농성장도 많은 사람들이 이탈했다는 소리도 들리고, 경찰투입이 임박했고, 남아있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강경 노조원들에 의해 갇혀 있는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여론을 호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박범수 기자가 서울대를 리포트한 것이다. 경찰투입을 앞둔 노조원들과 가족들이 방문한 모습을 보여주며 노조원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한다. 그리고 한 노조원을 인터뷰해 "빨리 복귀해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


언론이 마치 진실의 모든 면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 많은 시청자들은 이 리포트를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과연 박범수 기자가 의도했다는 대로 노조원들의 인간적인 면이 그대로 전해졌을까? 아니다. 그보다는 노조원들이 그들의 파업논리를 내세우기보다는 그냥 일자리에 복귀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인간적인 면이 아니라 노조원들의 불안한 모습만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방송에서 박덕남씨가 말하지 않은 부분을 만들어내어 내보낸 것은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인터뷰 당사자인 박덕남씨가 전하고 싶었던 수많은 부분 가운데 기자는 방송에 내보내기 좋은 한 부분만을 발췌하여 보도했다. 그리고 그 부분의 내용은 방송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박덕남씨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다른 전혀 엉뚱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박덕남씨가 인간적인 치욕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이다. 


박범수 기자의 취재 의도가 진정 노조원들도 일반 시민들과 다르지 않다는 인간적인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라면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그의 의도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표현되었다. 박범수 기자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자신의 무능이라도 탓하고 반성해야 한다.

언론은 만드는 자의 생각에 의해서 결정되는 아니라 보고 듣고 읽는 수용자들에 의해서 판단된다.



Posted by 정훈온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