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야기2002. 2. 3. 14:03

지난 1월 26일 방송된 MBC 오락프로그램 '느낌표!'의 '이경규의 다큐멘터리 보고서'에서 3개월만에 양재천에 살고있는 야생너구리를 포획하는 장면을 방송되었습니다. 그런데 최초 포획할 때 카메라가 이 장면을 놓쳐서 직후에 제작진이 연출하여 재촬영한 장면을 방영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결국 방송 당시 외국 촬영중이었던 담당CP 김영희PD가 귀국해서 이 사항을 알고 30일 MBC의 '섹션TV 연예통신'의 첫 소식으로 직접 대강의 사정 설명과 사과를 했고 '느낌표' 다음 주 방송인 2월 2일 방영분에서도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이런 사건에서 제작진의 잘못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락프로그램이지만 공영성을 기치로 내걸고 다큐적 기법을 도입한 프로그램에서 결국 연출의 한계를 벗어내지 못했고, 더구나 그 연출 상황을 알리지 않고 실제 당시 포획 화면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 것은 결과적으로 시청자를 속인 셈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3개월동안 너구리를 잡기 위해서 방송하고 포획조까지 투입했는데 정작 너구리를 잡을 때 카메라에 담지 못해서 그 잡는 모습을 연출했다는 데까지는 방송의 특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 당시 그 사실을 숨긴 점은 제작진의 안이한 방송관에서 기인한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정작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되는 부분은 그 다음 나타나는 다른 매체들의 반응입니다.

- "MBC「느낌표!」'양심선언' 방송가 화제"였습니다.(1/31, 연합뉴스 최승현 기자)
- "야생너구리 잡는 장면, 일부 연출" 느낌표 양심선언 (2/1, 경향신문 허유신 기자)

이 두 기사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담당CP가 스스로 자사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한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제작진의 반성과 다짐을 전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다른 신문사의 보도들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 MBC 너구리 생포장면 실제아닌 '연출' (2/1, 조선일보 한현우 사원)
- "너구리 생포장면 시청자 속였다" (2/2, 조선일보 한현우 사원)
- '망신표'된 '느낌표' (2/2, 한국일보 배국남 기자)
"...장시간 인적ㆍ물적 자원을 들여 체계적인 촬영작업을 벌여야 하는 다큐멘터리를 무리하게 오락 프로그램 코너로 끌어들인 것부터가 문제였다... 전문가가 아닌 개그맨에 불과한 이경규가 동물과 자연에 대한 총체적 이해없이 단순하게 시청자를 웃기려고만 해 다큐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는..."

- [사설] MBC의 파렴치한 조작 방영 (2/2, 동아일보 사설)
"...최근 MBC는 시청률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뒤져 왔다. 이 같은 경쟁의 와중에서 이번과 같은 무리수를 범했는지 모르지만 더 큰 문제는 기본적으로 방송이라는 사회적 공기로서 도덕성과 공공성을 저버렸다는 데 있다. 겉으로 공익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렇듯 시청자를 우롱한 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이 방송사 분위기라니 재발의 가능성은 상존해 있는 것이다..."

- "MBC‘다큐조작’ 명백한 시청자 기만" (2/2, 동아일보 이승헌 기자)
"...시청자들은 이처럼 연출된 다큐성 프로그램의 방영이 MBC 고위층의 사전 내락을 얻은 것인지 아니면 일선 제작진의 일방적 판단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명을 촉구하고 있다..."

물론 저도 앞서도 말했듯이 이번 사안은 공영방송, 오락프로그램, 다큐멘터리 등과 맞물려 논란을 일으킬만한 사안이고 제작진이 연출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동아일보의 사설과 일부 신문의 보도태도를 보면서 이건 심하고 왜곡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프로에, 그것도 심야시간대에 사과방송을 내보낸 것은 당당하지 못한 자세다."(동아일보 사설中)

이 말은 방송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비난을 위해 썼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된 방송은 1월 26일 방영되었고 그 다음 방송은 일주일후인 2월 2일, 사과방송은 1월 30일 했으며 그때 '자세한 내용은 2월 2일 방송때 다시 사과드리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그 다음 방송일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프로그램에 사과했다는 것을 비판한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또한 심야시간대를 지적했지만 방송 성격상 오락프로그램임을 감안하거나 시청률을 감안할 때 연예정보프로그램인 '섹션TV 연예통신'에 사과방송한 것을 비난할 바는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방송과 관련한 신문보도를 스크랩하고 있는 저는 다시 '느낌표!'가 시작된 이후 언론의 보도를 훑어봤습니다. 보도의 수는 별로 없었지만 대강 4가지로 경향으로 나눠볼 수 있었습니다.

1) MBC가 새로운 공익성 오락프로그램을 시도한다. (11월 10일 방송 시작전후)
2) 스타들의 말장난과 선정성 등 오락 프로그램의 고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 경실련 미디어워치의 보고서 소개 (조선, 연합, 한겨레, 중앙)
3) 방송의 책 관련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출판계가 활력을 찾으면서, 공공매체로서 방송의 영향력에 새삼 눈길이 쏠리고 있다. (한겨레, 중앙, 국민)
4) 특정 소설 읽기를 강요하고 책을 개그 소재로 전락시킨다 (조선)

1)은 방송 시작 시기, 2)는 경실련의 보고서를 참조로 했으니 그렇다고 치고 저는 3)과 4)의 대립적인 시각에 주목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1월 15일자 조선일보 "오락PD와 개그맨들이 이젠 '문학 권력'까지 손에 쥐려 하나."(한현우 사원)라는 첫마디로 시작하는 보도를 보면서 이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을 보는 일부 신문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문학권력'이라고 표현한 것은 결국 문학계의 영향력, 즉 책의 광고효과를 말하는 것이겠죠. 사실 그동안 이 권력은 신문사들의 독점이었습니다. 책의 매체적 특성과 가장 유사한 대중매체인 신문에서 신춘문예와 문학 섹션, 광고등으로 문학권력의 핵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영상매체인 방송에서 이런 매체적 특성을 극복하며 책 관련 프로그램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실제로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서 소개한 '괭이부리말 아이들''봉순이 언니'는 베스트셀러로 판매순위 1, 2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대중적 영향력이 큰 오락프로그램에서까지 책을 소개하고, 소개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신문사)이 가지고 있었던 문학권력을 방송에 빼앗기고 있는 시점에 이번 너구리 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이'느낌표!'는
- 주위 어르신의 진솔한 얘기를 들어본다는 '경림이의 길거리 특강'
- 좋은 책 한 권을 선정해서 한 달 동안 모든 국민이 읽어보자는 독서 캠페인적인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 환경문제를 대표해 도심속 야생동물을 찾아나서는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
- 아침밥을 못먹는 학생에게 밥을 주며 청소년들의 밥 먹을 권리마저 빼앗는 기성세대의 잘못을 꼬집는 '신동엽의 하자! 하자!',
등으로 구성된 오락프로그램이면서 공익적인 요소를 결합하고자 노력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내용적인 기본으로 하고, 입담있는 개그맨이 진행하면서 오락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전문가들이 뒷받침을 하는 형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선정 '이 달의 좋은방송'과 12월에는 방송위원회 선정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에 선정되며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면에는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문학권력 운운하며 비판하던 일부 신문이 이번 '너구리 연출'을 기회로 삼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죠. 이번 사건과 관련한 제작진의 잘못을 두둔할 생각은 없으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신문들은 시청률에 빠져 있는 현실이 이번 사건을 만들었다고 했지만 그게 사실이더라도 상대적으로 보면 신나게 연예인들과 폭력, 선정적인 화면으로 가득 채우다가 끝에 청소년 문제 운운하면서 한마디 덧붙이고 면피하려는 일부 다른 오락프로그램과는 질적으로 다른 프로그램이 '느낌표!'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최근 일부 신문들의 MBC 몰아세우기는 심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작년 신문개혁 정국에서 미디어비평 신설, 100분토론, 뉴스에서 신문개혁을 다루며 사회적 의제로 공론화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던 MBC에 대해서 일부 신문은 MBC프로그램들에 대해서 칭찬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신문들이 내세우는 평가 기준은 거의 시청률 뿐입니다. 인용되는 방송전문가와 시청자단체들도 각 신문사별로 편향성이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방송사가 시청률 경쟁에 빠져 있다는 지적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시청률을 잣대로 내미는 신문의 방송관련 보도는 충분히 걸러서 읽어야 할 것입니다.
 
<2002-02-03 14:03 오마이뉴스에 쓴 글>

Posted by 정훈온달